23명의 서예 지도를 먹물 갈아 해보면 그날 담임은 몸과 마음이 먹물 처럼 시커메진다.
1986년 호쌤이 6학년때 일이다.
생애 최초 메이커 옷을 입고 갔는데 짝꿍이 내 예쁜 티셔츠에 먹물을 남겼다.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아 속상했던 기억이 난다.
궤간 순시를 하니 왼손잡이들이 많은데 아주 어색해 보인다.
그러나 목표는 판본체의 특징에 맞게 써보는 거니 또 양군 생각이 자꾸 나서 매 순간 속상하다.
이 순간들 니가 같이했으면 좋겠다는 담임의 간절함이 닿기를 나의 간절함을 잘 이해하고 지지해주시는 보건쌤이 우렁각시마냥 놓고 가신 꽃 울컥 밖에서 일 보고 책방에 돌아왔더니 어머니가 카드를 내민다.
그 아이가 다녀갔단다.
얼마전 학교 숙제로 직업 인터뷰를한다고 들렀던 아이 쑥스러워 자꾸 엄마 뒤로 숨었던 아이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는 각진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동그란 미소를 아이에게 연신 띄워 보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멋적었지만 아이도 그 어정쩡한 웃음의 의미를 알아챘는지 차츰 낯가림이 눅어져 막판에는 농담도 슬쩍 건넬수 있었다.
우리 인터뷰 너무 잘해서 1등 하는거 아냐 카드를 펼쳤다.
사장님 사장님 올해도 바쁘시조 매일 힘내세요.
사장님 사장님은 착하고 저를 잘 챙겨주 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아프지 말고 매일매일 나오세요.
올해 건강하세요.의 올림 이제 1학년 맞춤법도 쫌 틀리고 지우개질도 제대로 안되어 문장의 연결점을 찾느라 읽는데 애를 좀 먹었지만 이 삐뚤빼뚤한 글씨가 왜 내 눈에는 천하 명필의 소작으로 보이던지 본다는 것도 관계의 산물, 대상에 대한 마음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우리가 객관적이라고 믿는 영역의 많은 부분이 실은 주관의 영역일수 있다.
어쩌면 객관은 무수한 주관의 겹침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나의 주관은 진리의 왜곡이 아니라 드물게는 또다른 진실의 단초가 되기도 하리라 아무튼 명필의 필적을 얻었는데 어찌 가만히있을쏘냐. 귀가후 카드의 글씨를 따라 써 봤다.
군더더기는 버리고 형태에 집중해 플러스펜으로 진하게 쓰다가 시나브로 그 글씨에 취해 버렸다.
마음 때문이 아니라 이 글씨 정말 잘 쓴것 같어! 얼마전 블로그에 끄적어 놓았던 단상이 다시 떠올랐다.
자기 조형 언젠가부턴가 글씨를 못쓴다는 말이 성립할까 싶은 의문이 들었다.
달필이라는 것이 규범적 필체에 얼마나 가까운지와 그 규범 안에서 용인 가능한 변형의 창의성으로 가름이 된다면 근본적으로 그 규범에서 벗어난 글씨는 어떻게 판단할수 있을까 규범이라는 것도 여러 스타일 중의 하나에 불과할 뿐이라고 여긴다면 다양한 필기구의 능통한 운용이라는 측면에서는 우열이있을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조형이라는 측면에서는 다시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처음 글자를 배우는 아이의 비뚤배뚤한 글씨에서도, 누가 봐도 악필인 사람의 글씨에서도 나는 종종 그들 나름의 조형감과 균형을 느낀다.
의문만 일뿐 알량한 지식과 경험으로 어떤 해답을 내놓을 처지는 못되니 숙제 처럼 머릿 속에 품어 놓고 두고두고 궁구해 볼 밖에 신고서점 지난번 진주 갔을때 찍어온 다양한 한문 글씨체들이다.
명필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어도 보기에 과히 나쁘지 않다.
한자는 획 즉 선이 다채롭다.
그 선들이 나아가고 구부러지며 뻗음과 올리는 모양새들에 따라 감히 아름다움의 경지라고까지 하겠다.
명필은 까막눈이 보아도 명필인 것이다.
진주국립박물관에서 만난 한자 지난번에 세종대왕님을 검색하고 발견한 글자체인데 넘 보기 좋아서 올려본다.
바른 한글 역시 아름다운 것은 당연하다.
네이버 바른 글씨를 쓴다는 것은 마음을 정화시키는 일이고 그러한 글씨를 본다는 것은 또 감동이다.
“장거리(*장이 처음 아주 정거장 서는 것은 그때 전부터 태연하시었지만 말을 했다.” 어머니께서는 막동이는 번 작년 봄 거리) 들으시었는지 이러한 들은 뒤에 있는 밭을 아버지에게서 여러 팔기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