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디자인 - 싸인

그해 기증 받은 기증품들은 다음해 부터 전시를한다고 해 2023년 4월 11일 기증식을 가졌다.

눈의 초점이 돌아왔고 걸음도 완벽하게 짱짱하게 걸을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 식사도 하시고 글씨 써볼 것을 권하자 그 멋진 필체가 펄떡이며 힘있게 다시 살아났다.
아버지가 다시 살아나신 듯한 기쁨. 하지만 다시 엄마가 걱정되는 순간이다.
정신이 오락가락하고 때때로 폭력을 쓰는 아버지를 엄마 혼자 감당하는 것은 그 또한 위험한 일 하루의 잠시라도 엄마를 쉬게 할 방법을 모색하던 중 주간 보호 센터를 알게 되었고 그렇게 아버지는 주간 보호 센터를 나가시게 되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경증의 인지장애를 겪는 노인들이 돌봄 도움을 받는 곳 그곳에서 2년여의 도움을 받았다.
주간보호 센터의 프로그램은 치매 어르신들께 많은 도움을 주는 알찬 구성으로 진행되는 듯했다.
그림 그리기, 만들기, 노래, 무용, 게임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어르신들 인지 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운영하고 점심 식사와 간식이 제공된다.
우리가 선택한 주간보호 센터는 인천 서구 치매센터 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시설도, 운영방식도 신뢰할 만한 곳이었다.
그러니 보호자 입장에선 더없이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안심하고 맡길수 있는 기관이있어 잠시 숨을 쉴수 있는 하루 24시간 중 8시간의 자유 그리고 센터에서는 한달에 한번 보호자들의 모임이있다.
이날은 어떤 일이있어도 참석하려 애썼다.
동병상련의 보호자들 어디에서도 이야기하지 못하고 이야기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어떤 이들보다는 한마디의 말, 주고 받는 눈빛 만으로도 서로 가 겪고 있는 고충, 두려움, 아픔을 순간에 이해해 버리고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주므로 그 어떤것 보다 커다란 위로를 받고 힐링의 시간이 되었다.
이야기를 들어 주는 내내 모두는 눈물을 흠쳐낸다.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서로에게 위로를 주며 동지애를 느낀다.
당시 우리 아버지가 다니시던 주간 보호 센터에는 내 시어머님도 함께 계셨다.
그렇다.
그때 나는 치매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었고 엄마는 치매 남편을 케어 하고 있었던 것. 그렇게 사돈이 함께 같은 치매센터에 나가시는 초유의 사건이 센터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라며 신기 해 하며 특별하게 케어 해주었다.
그렇게 2년여를 주간보호 센터를 다니신 아버지 다양한 활동을 통해 나아지기를 기대했던 우리 하지만 치매는 발병하면 완치의 길이 아직은 없다.
약간의 지연을 위한 치료는있어도 결국, 아직까지 치매는 발병하면 점점 서서히 나빠지는 길 밖에는 주간보호 센터의 도움을 받던 아버지는 결국 요양병원에 입원하게 되셨고 지금도 요양병원에 계신다.
지금은 돌아가시고 안 계신 아버님, 어머님 그리고 우리 아버지 이 세 분들 모두 치매를 앓으셨고, 현재 앓고 계신다.
예전 부모님들이 초기 치매를 앓으실때 치매 센터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기도했었다.
하지만 두분 모두 점점 상태가 안좋아지시며 힘들어했던 가족들 그 고단함과 힘겨움은 나의 개인 일기에 만 기록이 되었다.
10년의 시간이 흘렀다.
치매에 대해 이제 조금은 여유있는 마음과 객관적 시선으로 다시 기억하고 기록할수 있게 되었다.
지난 금요일 코로나 이후 아버지가 4년 만에 바깥 외출을 하신 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이다.
작년 남편을 만난 이후 다양한 음식점에 가보고는했다.
혼자일 때는 고작 뷔페나 술집에 가는 일이 전부였는데 짝꿍이 생기니 맛있는 음식 먹으러 다니는 일이 더 행복하고 가치있게 여겨졌다.
내가 사는 일산에는 맛집이 많은 편이다.
솔직히 회사 다닐때 가로수길에서 먹은 음식들보다 일산에서 먹는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질 정도다.
동네에는 인테리어도 멋지고 맛도 좋은 유명 맛집들이 즐비해있지만 한번 먹고 나면 그냥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들으시었는지 이러한 여러 들은 일이었다. 거리) 뒤에 말을 번 했다.” 서는 정거장 “장거리(*장이 있는 막동이는 어머니께서는 것은 전부터 처음 팔기로 작년 아버지에게서 봄 태연하시었지만 아주 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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