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8.09 23:15

[경험담] 가위눌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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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은 말하자면 귀신같은 사람이었다. 신출귀몰한 점도 있었지만, 각종 귀신이니, 요괴니 하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귀신 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김형은 내게 귀신같은 사람이 되었다.

 

 나와 김형이 아직 대학생일때, 그러니까 내가 아직 김형을 김선배 라고 부르던 시절에, 우리 과에선 김형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는 사람이 없었다. 김형은 신사적이고, 매너 있고,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가끔 술이 들어가면 나오는 그 기이한 이야기들 때문에 술자리에서 매우 기피되는 사람이었다. 그 날, 신입생 환영회 때,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김형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면 나 역시 김형과 이렇게까지 친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술취한 대학생들이 이리저리 떠들어 대는 소란스러운 술집에서, 김형은 앞자리에 앉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김형의 눈동자는 깊었고,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술이 몇잔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는지, 김형은 나에게 학교는 어떠냐, 과는 어떠냐는 질문과 함께 이런 저런 것들을 조언해 주었다. 내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잠시 후였다. 

 

 김형은 잠시 담배를 핀다며, 혼자는 심심하다고 나를 붙잡고 나갔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가끔 선배들이나 동기들에게 끌려가서 흡연 자리에 동석했던 경험도 몇 번 있었던 지라 잠자코 따라 나갔다. 술집의 소란스러움이 불편하기도 했다.

 

 김형은 담배를 피지 않았다. 대신 날 데리고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내 입에 숙취해소음료를 하나 억지로 하나 물려준 김형은, 내게 무섭지는 않은, 그러나 평생 기억될 이야기를 해주었다.

 

 "삼년 전에 저 술집에 불이 났거든."

 

 김형의 말은 상당히 뜬금없이 시작되었다. 김형은 당황하는 내 눈을 보고 빙긋 웃었다.

 

 "그렇게 놀랄 거 없어. 사람이 많이 죽은건 아니었으니까. 그냥 몇 명 정도? 우리학교 학생이 죽었긴 한데, 중요한건 아니야."

 

 김형은 술 때문인지 조금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내 얼굴이 눈에 띄게 안좋아 졌는지, 김형은 재차 손사래를 쳤다.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니고, 자기는 신경 안쓴다는 듯이.

 

 "사람이 죽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넌 귀신을 믿어? …아니, 표정을 보니까 알거 같네. 마침 귀신얘기가 나왔으니까 몇 마디 더 해보자. 내가 딱 너처럼 신입생일때 얘기야."

 

 내가 김형의 느닷없고 뜬금없는 이야기에 집중한 것은 아마 김형의 목소리가 상당히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나 역시도 평소에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형의 이야기가 인기가 없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형의 목소리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김형의 이야기를 견디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그 때 우리학과에 강성철 이라는 선배가 있었어. 자취를 하고 있기는 했는데, 자취집이 학교에서 좀 멀었던 데다가 항상 혼자 다니고, 안 좋은 소문도 조금 퍼져있고 해서 그 선배의 집에서 신세를 진 학생은 한명도 없었어. 보통 자취생의 집은 학생들의 아지트가 되기 마련이니까, 좀 특이한 경우지."

 

 김형은 내가 자신의 말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려는 듯이 잠시 뜸을 들였다.

 

 "문제는 나였어. 그 근처에 괜찮은 헌책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그래서 언제 하루 날을 잡아서 갔었지. 문제는 내가 그 헌책방을 못 찾았다는 건데… 결국 하루 종일 그 동네를 뒤지다가 차가 끊겨 버렸어. 비는 내리고, 우산은 없고, 옷은 젖고, 가방도 젖고, 진퇴양난이었는데 말야. 갑자기 뒤에서 누가 말을 걸더라고."

 

 강선배였어. 김형은 한숨을 쉬듯 그렇게 말하고 그때까지 손에 들고 이리 저리 굴리고 있던 유리병을 내려놓았다. 안에 들어있던 숙취해소 음료는 어느새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침 담배를 사러 나왔다가 나를 봤었나봐. 결국 강선배의 집에 가서 자게 됬어. 차비 정도는 있었지만, 굉장히 강하게 권유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거든. 뭐에 쫒기는 사람 같았어. 재밌지. 고등학교때 운동부였다는 선배가 '뭔가에 쫒기는'사람 같았다는 게 말이야."

 

 전혀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귀신이야기에서 시작했으니, 분명 이 이야기는 귀신이야기일 것이다. 집에 귀신이라도 나오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닐까 싶었다.

 

 "사실 말야, 그 선배가 자취를 하고 있다는 건 여러 학생들이 알고 있었어도 그 집이 어떤 집인지는 아무도 몰랐어. 말했다시피, 굳이 그 선배의 집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 그런데 그 집 이라는 게, 되게 허름한 방 두개짜리 작은 아파트였어. 한 사람이 살기에는 컸지만, 그 집에서 살기 위해 돈을 내는 것 자체가 아까울 수준이었으니까 말 다했지. 간단하게 몸을 씻고, 간단하게 겉옷만 벗어서 의자에 걸쳐놓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이었지만, 더럽지는 않았거든. 잠시만…"

 

 김형은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서 맥주를 두캔 사들고 나왔다. 한 캔을 나에게 건네준 김형은, 들고 있던 캔을 따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가끔씩 가위 눌릴때 드는 그런 기분 있잖아? 뭐라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굉장히 불쾌하고… 어쨌든, 그런 기분이 들었어. 진짜 가위를 눌렸구나 싶었지. 사실 그때까지는 가위에 눌려도 뭔가를 보거나, 듣지 못했어. 그냥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정도. 그 상태로 그냥 자고 일어나면 풀렸으니까, 가위에 눌리면 다시 자버리는 편이었지. 그런데 그날은 달랐어. 뭐가 보였거든."

 

 나는 김형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을 봤다. 사실, 그리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형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겪은 일이니 다시 떠올리면 두려울 만도 했을 것이다.

 

 "이상한… 남자였다고 해야 하나? 남자 같은 거였어. 그때 난생 처음으로 가위에서 '풀려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정말 무서웠거든. 얼굴은 창백하고, 눈도 희번득 하고 말야. 가위를 눌리면 귀신이 보인다는 게 사실인가 싶었어. 필사적으로 풀어보려고 했는데, 안되더라고. 사실 가위를 풀어보려는 시도도 처음이었긴 하지만 말야. 뭐… 내가 가위를 못 풀고 어정쩡하게 있으니까, 그 남자, 나는 눈길도 안주고 선배쪽만 빤히 바라보다가 사라졌어. 난 '갔다'는 안도감에 그대로 다시 자버렸지. 가위는 결국 못 풀었고 말야.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그땐 김형의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사실 여부를 떠나 괴담, 그것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직접 들었다고 주장하는 괴담이었고, 한밤중,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골목길의 편의점 앞에 앉아서 듣기엔 조금 소름끼치는 이야기였다.

 

 "다음날 말야. 일어나서 선배랑 같이 밥을 먹었어. 반찬이라고 해봤자 계란프라이에 김치밖에 없었지만 말이야. 서로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식탁에선 대화가 거의 없었어. 결국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겠다 싶었던 내가 어젯밤 가위에 눌렸던 이야기를 꺼냈지. 그땐 가위에 눌린 경험담 같은건 굉장히 가벼운 이야기 소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도 했고. 그런데, 갑자기 선배가 새하얗게 질리더라고. '새하얗게 질린다'는 표현이 단순한 비유 같은게 아니라 진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김형은 맥주 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 팔짱을 꼈다.

 

 "선배는 나한테 '너도 그 남자를 봤냐'고 물어봤어. 당연히 봤다고 대답했지. 어쨌든 본건 맞으니까. 그러니까, 선배가, 숟가락을 집어 던지는것처럼 내려놓고 의자에 파고들고 싶어하기라고 하듯이 움츠러들었어. 선배 말로는, 자기는 몇년 전부터 일주일에 서너번씩, 내가 눌린 것과 같은 가위에 눌렸다고 해. 단 한번도, 그 남자가 사라지기 전까지 가위를 푸는데 성공한 적도 없었고. 나처럼 말이야. 최근 들어서, 가까스로 가위를 푸는데 성공하긴 했대. 그런데…"

 

 김형은 마치 극적 연출을 노리는 연극배우처럼 말을 끊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김형 쪽으로 내밀면서 까지 김형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 그 남자가, 가위가 풀려도 안 없어진다는 거야. 오히려, 그때까지 먼 곳을 바라보던 시선이 선배 쪽으로 향하더래.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온다고. 그리고 조금씩, 남자가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고도 말하더라. 사실 무서웠지.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랑 그렇게까지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나한테 그런 장난을 칠 리도 없었고, 내가 같은걸 봤다고 하기 전까지는 스트레스로 인한 악몽 같은걸로 생각했다나봐."

 

 김형은 잠시 헛기침을 했다.

 

 "난 먹는둥 마는둥 하고 잽싸게 짐을 챙긴 다음에 그 집에서 나왔어. 문제는 그 다음이었지. 그 선배가 점점 말라가더라고. 눈 밑에 기미가 끼고, 점점 소극적이 되고, 점점… 죽어가는 거 같았어. 가끔씩은 나를 따로 불러서 자기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지만… 내가 뿌리쳤지. 사실 나도 무서웠던 데다가,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감도 안 왔으니까. 그러다가 죽었어."

 

 나는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의심하며 멍청한 소리를 냈다. 아마 '네?'와 '에?"의 중간쯤 되는 소리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죽었다니까?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김형은 자기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냐는 듯이 말했다.

 

 "진짜 기이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끝나. 왜냐면, '진짜 있던 일'이거든. 그 선배가 마지막에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왜 죽었는지, 죽은 순간엔 어땠는지는 아무도 몰라. 전해주는 사람도 없어. 죽어버렸으니까. 모든 이야기에서 사람이 죽는건 아니니까 모든 이야기의 끝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 김형은 나를 데리고 다시 술집으로 들어갔다. 몇년 전에 사람이 죽었다는 술집이라는 것을 안 뒤에 그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약간의 심호흡이 필요했다.

 

 술집으로 돌아온 김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다른 신입생들에게 끌려가서 술을 몇잔 더 마신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뒤로, 내가 김형에게 종종 듣게 될 이야기, 김형은 '괴담은 아닌, 그냥 기담'이라고 표현했던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무섭지도 않고, 아주 많이 기괴하지도 않은데, 본인이 직접 들은 듯 한, 그래서 이상하게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 아마 그래서 '기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 기억에 가장 잘 남는 이야기는 바로 이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하는 김형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면서도 상당히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뒤로 김형이 그런 모습으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김형에게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기 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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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김형은 말하자면 귀신같은 사람이었다. 신출귀몰한 점도 있었지만, 각종 귀신이니, 요괴니 하는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귀신의 이야기를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은 귀신 이라는 게 내 생각이었고, 그렇기에 김형은 내게 귀신같은 사람이 되었다.

 

 나와 김형이 아직 대학생일때, 그러니까 내가 아직 김형을 김선배 라고 부르던 시절에, 우리 과에선 김형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는 사람이 없었다. 김형은 신사적이고, 매너 있고, 유쾌한 사람이었지만, 가끔 술이 들어가면 나오는 그 기이한 이야기들 때문에 술자리에서 매우 기피되는 사람이었다. 그 날, 신입생 환영회 때,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김형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면 나 역시 김형과 이렇게까지 친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술취한 대학생들이 이리저리 떠들어 대는 소란스러운 술집에서, 김형은 앞자리에 앉은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김형의 눈동자는 깊었고,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는 술이 몇잔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는지, 김형은 나에게 학교는 어떠냐, 과는 어떠냐는 질문과 함께 이런 저런 것들을 조언해 주었다. 내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잠시 후였다. 

 

 김형은 잠시 담배를 핀다며, 혼자는 심심하다고 나를 붙잡고 나갔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았지만, 가끔 선배들이나 동기들에게 끌려가서 흡연 자리에 동석했던 경험도 몇 번 있었던 지라 잠자코 따라 나갔다. 술집의 소란스러움이 불편하기도 했다.

 

 김형은 담배를 피지 않았다. 대신 날 데리고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갔다. 내 입에 숙취해소음료를 하나 억지로 하나 물려준 김형은, 내게 무섭지는 않은, 그러나 평생 기억될 이야기를 해주었다.

 

 "삼년 전에 저 술집에 불이 났거든."

 

 김형의 말은 상당히 뜬금없이 시작되었다. 김형은 당황하는 내 눈을 보고 빙긋 웃었다.

 

 "그렇게 놀랄 거 없어. 사람이 많이 죽은건 아니었으니까. 그냥 몇 명 정도? 우리학교 학생이 죽었긴 한데, 중요한건 아니야."

 

 김형은 술 때문인지 조금 횡설수설하며 말했다. 내 얼굴이 눈에 띄게 안좋아 졌는지, 김형은 재차 손사래를 쳤다. 정말로, 아무 일도 아니고, 자기는 신경 안쓴다는 듯이.

 

 "사람이 죽은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넌 귀신을 믿어? …아니, 표정을 보니까 알거 같네. 마침 귀신얘기가 나왔으니까 몇 마디 더 해보자. 내가 딱 너처럼 신입생일때 얘기야."

 

 내가 김형의 느닷없고 뜬금없는 이야기에 집중한 것은 아마 김형의 목소리가 상당히 좋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나 역시도 평소에 그런 이야기를 좋아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김형의 이야기가 인기가 없다는 건, 대부분의 사람들은 김형의 목소리가 좋음에도 불구하고 김형의 이야기를 견디지 못했다는 이야기일 테니까.

 

 "그 때 우리학과에 강성철 이라는 선배가 있었어. 자취를 하고 있기는 했는데, 자취집이 학교에서 좀 멀었던 데다가 항상 혼자 다니고, 안 좋은 소문도 조금 퍼져있고 해서 그 선배의 집에서 신세를 진 학생은 한명도 없었어. 보통 자취생의 집은 학생들의 아지트가 되기 마련이니까, 좀 특이한 경우지."

 

 김형은 내가 자신의 말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게 해주려는 듯이 잠시 뜸을 들였다.

 

 "문제는 나였어. 그 근처에 괜찮은 헌책방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거든. 그래서 언제 하루 날을 잡아서 갔었지. 문제는 내가 그 헌책방을 못 찾았다는 건데… 결국 하루 종일 그 동네를 뒤지다가 차가 끊겨 버렸어. 비는 내리고, 우산은 없고, 옷은 젖고, 가방도 젖고, 진퇴양난이었는데 말야. 갑자기 뒤에서 누가 말을 걸더라고."

 

 강선배였어. 김형은 한숨을 쉬듯 그렇게 말하고 그때까지 손에 들고 이리 저리 굴리고 있던 유리병을 내려놓았다. 안에 들어있던 숙취해소 음료는 어느새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침 담배를 사러 나왔다가 나를 봤었나봐. 결국 강선배의 집에 가서 자게 됬어. 차비 정도는 있었지만, 굉장히 강하게 권유해서 거절할 수가 없었거든. 뭐에 쫒기는 사람 같았어. 재밌지. 고등학교때 운동부였다는 선배가 '뭔가에 쫒기는'사람 같았다는 게 말이야."

 

 전혀 재밌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귀신이야기에서 시작했으니, 분명 이 이야기는 귀신이야기일 것이다. 집에 귀신이라도 나오는 사람의 이야기는 아닐까 싶었다.

 

 "사실 말야, 그 선배가 자취를 하고 있다는 건 여러 학생들이 알고 있었어도 그 집이 어떤 집인지는 아무도 몰랐어. 말했다시피, 굳이 그 선배의 집에 가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 그런데 그 집 이라는 게, 되게 허름한 방 두개짜리 작은 아파트였어. 한 사람이 살기에는 컸지만, 그 집에서 살기 위해 돈을 내는 것 자체가 아까울 수준이었으니까 말 다했지. 간단하게 몸을 씻고, 간단하게 겉옷만 벗어서 의자에 걸쳐놓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잤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건물이었지만, 더럽지는 않았거든. 잠시만…"

 

 김형은 다시 편의점에 들어가서 맥주를 두캔 사들고 나왔다. 한 캔을 나에게 건네준 김형은, 들고 있던 캔을 따며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가끔씩 가위 눌릴때 드는 그런 기분 있잖아? 뭐라 설명은 잘 못하겠지만… 굉장히 불쾌하고… 어쨌든, 그런 기분이 들었어. 진짜 가위를 눌렸구나 싶었지. 사실 그때까지는 가위에 눌려도 뭔가를 보거나, 듣지 못했어. 그냥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정도. 그 상태로 그냥 자고 일어나면 풀렸으니까, 가위에 눌리면 다시 자버리는 편이었지. 그런데 그날은 달랐어. 뭐가 보였거든."

 

 나는 김형의 몸이 살짝 떨리는 것을 봤다. 사실, 그리 무서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형의 입장에서는, 스스로 겪은 일이니 다시 떠올리면 두려울 만도 했을 것이다.

 

 "이상한… 남자였다고 해야 하나? 남자 같은 거였어. 그때 난생 처음으로 가위에서 '풀려나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정말 무서웠거든. 얼굴은 창백하고, 눈도 희번득 하고 말야. 가위를 눌리면 귀신이 보인다는 게 사실인가 싶었어. 필사적으로 풀어보려고 했는데, 안되더라고. 사실 가위를 풀어보려는 시도도 처음이었긴 하지만 말야. 뭐… 내가 가위를 못 풀고 어정쩡하게 있으니까, 그 남자, 나는 눈길도 안주고 선배쪽만 빤히 바라보다가 사라졌어. 난 '갔다'는 안도감에 그대로 다시 자버렸지. 가위는 결국 못 풀었고 말야. 그런데…"

 

 나는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사실 그땐 김형의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건 사실 여부를 떠나 괴담, 그것도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직접 들었다고 주장하는 괴담이었고, 한밤중,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골목길의 편의점 앞에 앉아서 듣기엔 조금 소름끼치는 이야기였다.

 

 "다음날 말야. 일어나서 선배랑 같이 밥을 먹었어. 반찬이라고 해봤자 계란프라이에 김치밖에 없었지만 말이야. 서로 그렇게까지 친한 건 아니었으니까, 당연히 식탁에선 대화가 거의 없었어. 결국 무슨 이야기라도 해야겠다 싶었던 내가 어젯밤 가위에 눌렸던 이야기를 꺼냈지. 그땐 가위에 눌린 경험담 같은건 굉장히 가벼운 이야기 소재라고 생각하고 있었기도 했고. 그런데, 갑자기 선배가 새하얗게 질리더라고. '새하얗게 질린다'는 표현이 단순한 비유 같은게 아니라 진짜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는 걸 처음 알았어."

 

 김형은 맥주 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의자에 기대 팔짱을 꼈다.

 

 "선배는 나한테 '너도 그 남자를 봤냐'고 물어봤어. 당연히 봤다고 대답했지. 어쨌든 본건 맞으니까. 그러니까, 선배가, 숟가락을 집어 던지는것처럼 내려놓고 의자에 파고들고 싶어하기라고 하듯이 움츠러들었어. 선배 말로는, 자기는 몇년 전부터 일주일에 서너번씩, 내가 눌린 것과 같은 가위에 눌렸다고 해. 단 한번도, 그 남자가 사라지기 전까지 가위를 푸는데 성공한 적도 없었고. 나처럼 말이야. 최근 들어서, 가까스로 가위를 푸는데 성공하긴 했대. 그런데…"

 

 김형은 마치 극적 연출을 노리는 연극배우처럼 말을 끊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몸을 김형 쪽으로 내밀면서 까지 김형의 다음 말에 집중했다.

 

 "… 그 남자가, 가위가 풀려도 안 없어진다는 거야. 오히려, 그때까지 먼 곳을 바라보던 시선이 선배 쪽으로 향하더래.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온다고. 그리고 조금씩, 남자가 있는 시간이 길어진다고도 말하더라. 사실 무서웠지.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랑 그렇게까지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나한테 그런 장난을 칠 리도 없었고, 내가 같은걸 봤다고 하기 전까지는 스트레스로 인한 악몽 같은걸로 생각했다나봐."

 

 김형은 잠시 헛기침을 했다.

 

 "난 먹는둥 마는둥 하고 잽싸게 짐을 챙긴 다음에 그 집에서 나왔어. 문제는 그 다음이었지. 그 선배가 점점 말라가더라고. 눈 밑에 기미가 끼고, 점점 소극적이 되고, 점점… 죽어가는 거 같았어. 가끔씩은 나를 따로 불러서 자기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지만… 내가 뿌리쳤지. 사실 나도 무서웠던 데다가, 뭘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감도 안 왔으니까. 그러다가 죽었어."

 

 나는 방금 내가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의심하며 멍청한 소리를 냈다. 아마 '네?'와 '에?"의 중간쯤 되는 소리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죽었다니까?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김형은 자기가 무슨 이상한 말을 했냐는 듯이 말했다.

 

 "진짜 기이한 이야기들은 대부분 이런 식으로 허무하게 끝나. 왜냐면, '진짜 있던 일'이거든. 그 선배가 마지막에 어떻게 죽었는지, 정확히 왜 죽었는지, 죽은 순간엔 어땠는지는 아무도 몰라. 전해주는 사람도 없어. 죽어버렸으니까. 모든 이야기에서 사람이 죽는건 아니니까 모든 이야기의 끝이 이렇지는 않겠지만 말이야."

 

 그렇게 이야기를 끝내고, 김형은 나를 데리고 다시 술집으로 들어갔다. 몇년 전에 사람이 죽었다는 술집이라는 것을 안 뒤에 그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약간의 심호흡이 필요했다.

 

 술집으로 돌아온 김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다른 신입생들에게 끌려가서 술을 몇잔 더 마신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 뒤로, 내가 김형에게 종종 듣게 될 이야기, 김형은 '괴담은 아닌, 그냥 기담'이라고 표현했던 이야기의 대부분은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무섭지도 않고, 아주 많이 기괴하지도 않은데, 본인이 직접 들은 듯 한, 그래서 이상하게 소름이 끼치는 이야기. 아마 그래서 '기담'일 것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내 기억에 가장 잘 남는 이야기는 바로 이 이야기였다. 이 이야기를 하는 김형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면서도 상당히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 뒤로 김형이 그런 모습으로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김형에게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되기 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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